여호와 이레(창세기 22:11~18) / 이영복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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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혜란 작성일12-07-09 15:18 조회28,8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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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창세기 22:11~18)
이영복(다비다자매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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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한 창세기 22장 문제는 정말 하나님이 내신 문제일까?
우리는 창세기 22장을 열 때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악을 행하라고 명령하기도 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신 제사를 금하셨지요. 답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악을 행하라고 명령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얼른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시험이었지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말이 되는 시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목숨을 건 러시안 룰렛 같은 도박도 아니고 수도원 훈련을 하면서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스승이 제자를 테스트해보는 그런 시험이 아니라 미리 답을 가르쳐주고 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100세에 이삭을 얻는 것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가르쳐주신 인간의 시간인 크롤로스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 의미를 세월이 지난 후에도 확실히 알고 있는지 테스트한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삭을 바치는 사건 이전 창세기 15장 1~6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씨를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의 번성이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출산하지 못하는 사라는 조바심이 났고 85세인 아브라함에게 그의 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출산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동침하여 86세에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얻게 되었지요(창 16장).
그런데 13년이 지나 아브라함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습니다. 99세 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서 사라를 통한 후사 약속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된 남자와 90세 여자가 어찌 아이를 낳겠느냐며 엎드려 속으로 웃습니다.(창 17:17)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명확히 밝히고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이삭’이라고 말입니다. 웃음이란 뜻이지요.
아브라함은 창17:19에서 사라가 낳을 아들, 이삭의 후손을 통해 영원한 언약을 이루실 계획을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모리아산에서 바치라고 한 것은 이삭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음을 능히 눈치 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모한 순종도 맹신도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막연한 희망도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지요.
2.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고서야 비로소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습니까, 그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이미 믿음을 인정받았습니까?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통과하고서야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되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앞서 읽은 창세기 15장에서 이미 아브라함이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로 여기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의 시험의 결론은 ‘여호와 이레’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두 번째 나타나서 하신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미리 알려준 창세기 15장의 답을 그대로 한 번 더 강조하여 되풀이한 것입니다. 문제와 답을 미리 알려준 시험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 등 종교적 활동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은혜로 먼저 주어지는 것이고 거기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는 A+점수를 줍니다. 그런데 여호와이레는 그 시험을 통과하고 난 후의 준비입니까? 이미 그 전에 이미 준비되었던 것이라 생각합니까?
재미있는 질문하나 해봅시다. 숫양의 뿔이 수풀에 언제 걸렸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치려는 순간이나 바로 직후일까, 아니면 그전부터 이미 걸려 있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모리아산 사건과 관련한 모든 것을 계획하신 하나님께서 되어질 일을 아시고 미리 준비해 놓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얼마나 시간적으로 심적으로 절박하셨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스톱!”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대는 것을 급하게 막은 외침 속에는 먼 훗날 독생자 예수를 희생 제물로 드릴 계획을 미리 하고 계신 아버지로서의 애간장이 찢어지는 듯한 심정이 함께 묻어 있었다고 믿습니다. 모리아산의 이삭을 대신한 번제물로서의 숫양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구원을 위한 감동적인 ‘여호와 이레’가 계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다비다자매 여러분,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하루하루 삶 속에서의 여호와 이레, 곧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계심을 기대하며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그분께 맡깁시다. 날마다 그분을 더 잘 알아가고 닮아가는 믿음의 행진을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