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에서 엘림까지, 그리고...(출15:22~27) / 이영복 장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kim 작성일24-04-11 12:56 조회2,839회 댓글0건첨부파일
- 마라엘림.hwp (22.0K) 0회 다운로드 DATE : 2024-04-11 12:56:11
관련링크
본문
마라에서 엘림까지, 그리고...(출15:22~27)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지난 1월 우리는 다비다자매회 창립 30주년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먼저 서른 살 다비다자매회의 정체성에 대해 확인을 해보고, 그 정체성의 의미를 더욱 잘 살리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다비다자매회의 두 가지 정체성
1) 다비다자매회는 사단법인입니다.
우선 다비다자매회는 ‘사단법인 다비다자매회’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사단법인입니다. 서울시의 인가를 받은 비영리 법인이지요. 2013년에 사단법인이 되었으니 11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사단법인입니다. 정관에 기독교라는 말은 없지만 상처입은 치유자의 의미와 언 손이 언 손을 녹인다는 비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제가 2013년 3월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다비다자매회의 초대 이사장 직의 취임에 즈음하여 썼던 ‘사단법인다비다자매회’ 십행시를 꺼내 읽어보고자 합니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30년을 매듭짓고 새로운 30년을 향해 나아가는 전환기의 다비다자매회가 보다 비중을 두고 선택해야 할 길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비다, 그 안행(雁行)의 대열 선단에 나서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었고
단절된 듯한 시간의 흐름, 그 고독의 고통스런 짐을
내가 질 수는 없었습니다.
법 가운데 최고의 법은 사랑의 법이라,
곧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주는 것일진대
인생의 거친 광야 천릿길 나선 당신을
그저 혼자 걷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소곳이 이만치 떨어져서 동행한 지난 19년처럼
조용히 누이들을 따라가려 했는데
비행, 곧 기러기의 감동 비행(雁行) 대열
선단에 서라 하십니다그려.
다비다 가족을 위해 허공에도 길을 내시는
주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의지할 따름입니다.
자괴감과 상실감은
허공에 훌훌 날려 버립시다.
매진해 이루어가야 할 우리의 목적을 위해
거센 바람은 내가 가장 앞 서 맞을 테니 끝까지 함께 갑시다.
회복과 치유를 얻는 데만 머물지 말고
곁에 계신 홀로된 자매에게 힘이 되어 줍시다.(2013.3.)
2) 다비다자매회는 교회입니다.
이 사단법인보다 더 중요한 다비다자매회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바로 다비다자매회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홀로된 자매들이 서로 지체가 되고 서로를 돕되, 일찍부터 3S 정신(Small, Simple, Slow)을 추구해온 참 좋은 교회입니다.
다비다 창립 30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님이 선물로 주신 교회의 신비를 풍성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조직이나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이란 의미로서의 교회 말입니다. 매주일 모이지는 않았지만 매월 은혜로운 정기모임을 가졌고 매주 두 번 큐티와 중보기도 모임 등으로 모였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9장에 등장하는 여제자 다비다의 진면목을 보여주신 두 목사님과 큰언니들과 조장 등 많은 분들의 섬김을 통해 다비다자매회는 상처 입은 치유자들의 아름다운 교회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단법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정부가 만들어준 것이라면 교회로서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2. 마라에서 엘림까지
오늘 본문에는 두 개의 중요한 지명이 나옵니다. 하나는 마라이고 또 하나는 엘림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23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바로 마라의 쓴물 사건입니다.
마라의 뜻이 무엇입니까? ‘쓰다’, ‘괴롭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룻의 시어머니 이름을 아시지요? 나오미입니다. 기쁨을 뜻하지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자기 이름을 기쁨을 뜻하는 나오미 대신 불러 달라 했던 이름이 ‘마라’였잖아요. 삶이 쓰고 괴롭다는 표현이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마시지 못하자 모세를 탓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불과 3일 전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말입니다. 우리도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쓴 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베푼 기적을 망각하고 남 탓을 하고 불평을 하기가 쉽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때 우리는 모세가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출15:25)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리키신 한 나뭇가지를 물에 던집니다. 그랬더니 그 쓴 물이 단물이 되어 마실 수 있게 되었지요.
이 나뭇가지는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하게 합니다. 죽은 것을 살리는 생명의 십자가지요. 다비다자매회의 첫 시작은 어땠습니까? 모인 자매들이 마치 마라의 쓴 물 앞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았습니다. 그런 마라의 인생을 하나님이 바꿔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였지요. 하나님은 쓴물이 단물로, 괴로움이 기쁨으로 바뀌는 치유를 경험하게 하며 다비다자매회를 이끌어주셨지요. 감히 고난도 유익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 영과 육을 고쳐주신 여호와라파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십시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이하 첨부 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