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이야기> 오직 그분을 드러내며 (이영복 이사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혜란 작성일12-10-17 14:51 조회26,41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큐티 이야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오직 그분을 드러내며
이영복 이사장
1. 큐티 나눔, 그 기쁨과 유익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
요한복음 4장에는 주님께서 우물에서 물 긷는 수가성 여인에게 다가가 예배, 생수 등에 관한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인과의 대화를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주님께서는 먹을 것을 사러갔다가 돌아온 제자들에게 나의 양식은 따로 있다며 먹기를 사양하셨는데 그때의 주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울러 주님을 만난 감격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외치던 수가성 여인의 심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그 당시에도 남편이 아닌 한 남자와 동거하던, 그러기에 동네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 태양열이 뜨거운 한 낮에 실에게 물을 길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과의 감격적인 만남은 그녀로 하여금 받은 은혜를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한 큐티는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큐티 나눔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유익을 줍니다. 우선 큐티를 통해 경험한 은혜와 감격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자기정리를 하게하며 타인이 깨달은 바를 공유하게 합니다. 나아가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하며 영적인 도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큐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좋은 큐티 나눔을 위해서는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솔함입니다. 또한 자기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신 과장하고 자랑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러한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용기를 가지고 진솔하게 말씀에 비춰진 자신을 드러내며 오직 그분을 높이는 나눔만 이루어진다면 공동체적 감동과 변화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큐티가 나눔을 위한 큐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레 흥분된 나눔으로 이어지는 큐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좋은 큐티 나눔에는 먼저 개인적으로 영성 있는 큐티를 갖는 것이 요구됩니다.
2. 상한 갈대 이야기
그리고, 큐티의 나눔을 단지 자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도중 만난 하나님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나눔의 목적은 결국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한 헌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이사야 42:3의 '상한갈대'라는 단어는 늘 자신을 상심케 하는 단어였습니다. 대학시절, 저는 한 때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해본 적이 있습니다. "상한 갈대 찬바람에 몸부림치는, 아! 삶이란 괴로운 고향……. "
인생살이가 원래 사람은 미약하고 외부의 압박은 강하여 언제 꺾일지 모르는 것 이지만, 그래도 고향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무언가 푸근함이 스며 있는 것이라 는 그런 정서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사야 42:3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바야흐로 '상한 갈대의 연약함'보다는 '꺾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연약하고 처량한 모습이나 유쾌하지 못한 환경을 묵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그 체휼하시는 심정을 묵상해야겠다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갈대에 대한 자신의 정서나 철학적인 관념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인격적인 벌거벗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큐티 나눔은 그러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자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묵상을 통해 만난 하나님을 드러내자는 것입니다.
3. 큐티하는 다비다자매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다비다자매회 매월 정기 모임도 큐티 나눔의 형태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나눔으로는 부족하기에 거주지 지역별로 리더와 모임장소(리더나 회원의 집이 좋을 것임)를 정하고 매주 한 번씩 만나 큐티를 나누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그룹(적게는 3-4명, 많게는 7-8명) 큐티 나눔은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큐티를 하면서 부딪치는 게으름, 말씀에 대한 이해 부족, 오해 또는 회의 등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소그룹 큐티 나눔 모임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내적 치유와 중보기도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서로 나누는 분들 간의 관계 또한 진실하고 투명해져서 서로의 사정과 형편을 잘 헤아리게 되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그룹 큐티 모임이 활성화되면 그 그룹 회원 중에서 새로운 리더를 정하여 새로운 모임을 결성토록 하여야 합니다. 소그룹 큐티 모임의 재생산이지요. 저는 다비다자매회도 이러한 단계까지 나아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동안 8회 연재를 했던 ‘큐티 이야기’를 끝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