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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하나님의 사랑 / 김혜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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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0-01-09 13:22 조회17,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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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하나님의 사랑(요일 4:7~11)

 

 

                                   김혜란 목사(다비다자매회 회장)

 

1. 사랑의 선물, 예수님

 

저의 7살 손녀, 지우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빨리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일어난 지우는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손에 들고 제게 달려 왔습니다. 아빠, 엄마에게 자랑을 해야 하는데 일어나지 않으니까 깨우지는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제게 산타 할아버지 선물 이야기를 하며 기뻐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이니?”하고 물었더니 “선물 받는 날이죠.”라고 대답한 손녀에게 성탄절은 ‘예수님 생일’이고 예수님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말해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쨌든 선물을 받고 그렇게 좋아하면 선물 준 사람도 기뻐서 또 선물해 주고 싶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성탄절에 선물 받으셨어요? 선물을 안 받으셨다고요?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귀하고 값진 선물인 독생자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오늘은 다비다 자녀들이 많이 와서 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다비다 자녀 홈커밍 데이’ 행사를 같이 하기로 한 날이기에 어려서 엄마 따라 다비다에 나오던 자녀들까지 함께 모였잖아요. 엄마들은 물론 제게도 다비다 자녀들이야말로 또 하나의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탕자처럼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떠나버릴 것을 아셨습니다.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고, 또 잠시 후면 수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이들을 위하여 마지막 만찬을 같이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일매일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연탄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옷과 몸에 새까만 연탄가루를 묻히지 않을 수 없듯이 이 세상의 유혹과 시험 속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의 죄가 더 크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사실은 세상을 훨씬 더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임을 잘 아시면서도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십니다.“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 왔노라.(눅5: 1~32)는 말씀은 우리 죄인들에게 소망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3.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도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은혜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도 죽었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때 우리도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성탄절이 되면 기억나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30여 년 전, 제가 한국은행에 입행한 그 해 12월 어느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12월은 한 달 내내 온 시내가 성탄절 분위기로 가득하였습니다. 길거리마다 캐롤이 쏟아져 나오고 예수를 믿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성탄 선물도 사고 성탄 트리도 만들고 싶어 한국은행 정문을 나와 남대문시장을 가기 위해 남대문 지하도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남대문 지하도는 습기가 가득차고, 어둡고, 더러웠습니다. 신문지나 두꺼운 종이 깔고 노숙을 하거나 구걸하는 사람들이 구걸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지하도를 건너는데, 한 남자가 포대 종이를 깔고 누워있었습니다. 얇은 옷은 너무 낡아서 구멍이 나고 더러웠습니다.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발발 떨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기 위해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나도 그 남자를 보았을 때 그냥 지나치고 싶었습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날씨도 너무 추웠고, 선물도 사야 하고, 점심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사무실에 빨리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숙인이 너무나 추워보였고 발발 떨며 배고파하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멀쩡한 남자가 거지꼴하고 돈을 구걸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 사람은 돈을 구걸하기 위해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정말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급히 남대문 먹자골목으로 달려가서 따뜻한 호박죽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앗차! 수저가 없구나.” 또 허겁지겁 그 먹자골목에 가서 숟가락을 얻어와 그 남자에게 주었으나 손이 굳어 떠먹지를 못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죽을 떠서 먹이려 했지만 그 남자는 받아먹을 기운조차 없어 제대로 먹지를 못했습니다. 간신히 몇 수저 먹이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퇴근 시간 쯤 되었을 때 옆의 직원들이 수군거렸습니다. 남대문 지하도에 한 남자가 죽었는데 몇 숟갈 떠먹은 호박죽이 그 곁에 있었다고. 가슴이 철렁. “호박죽이 곁에 있었다면 바로 그 남자인데. 그렇다면 그 호박죽이 그 사람에겐 마지막 식사였구나. 죽어가는 그 사람에게 그 호박죽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어 줬다면 좋겠다.”는 짠한 감정이 아픈 가슴을 헤집고 떠올랐습니다. “아! 만약, 좀 더 일찍 누군가의 사랑의 손길이 그에게 닿았더라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성탄절은 모두에게 기쁜 날인데 그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굶주려 죽은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주변에 외롭고 가난하고,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이 없는지, 상처와 좌절과 갈등으로 사랑에 목말라 떨고 있는 소외된 분은 없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4. 온전한 사랑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2)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사랑의 특징은 나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때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이렇게 고백하지요. “주님,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 주님 한 분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고백만으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온전한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님의 계명 중 최고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얼마나 사랑에 미숙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비다 사역을 하면서도 돌이켜 보면 사랑이 미숙하여 상처를 주고 오해를 산 적이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내 중심적인 사랑, 나의 만족을 위한 사랑, 아니, 사랑한 것을 되돌려 받기를 원하는 사랑 등등.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의 사랑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상황이 좋아진 것이 아닌데도 주님을 만난 사람은 마음이 근심과 두려움 대신 평안해지고, 슬픔 대신 기쁨, 좌절과 낙망 대신 소망을 갖게 되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고 햇빛을 받게 해주면 슬금슬금 되살아나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죽어가던 영혼을 살리는 신비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던지는 사랑의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 하나가 그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마음의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힘을 얻게 합니다. 참 신비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비한 사랑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다비다자매회 안에서도 자매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고통 받는 자를 안아주고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경청해 주고 공감해주며 격려하고 작은 힘이라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랑을 입은 자매들의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고 소망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의 힘에 놀라곤 합니다.

 

5. 나가면서

 

여러분, 오늘은 우리에게 선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며, 2020년 새해를 맞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이 시간에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분하고, 억울하고, 치가 떨리고, 절대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며 사랑의 영역을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이 이 땅에 가득히 비취어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 사랑으로 사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그들이 예수님을 찾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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