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물 좀 주세요!(요4:13~26) / 이주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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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10-27 16:21 조회8,4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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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물 좀 주세요!(요4:13~26)
이주은 목사(다비다자매회 회장)
1. 들어가며
저는 28살 딸과 같이 살고 있는데 언젠가는 제 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갈 딸이기에 요즘은 혼자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6년간이나 일본 선교지에서도 혼자 잘 살아왔던 저였지만, 작년에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 보내고 그 상실감에 몸과 마음이 아직 회복이 안 되어서인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며,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혼자 남을 것이 먼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제가 힘든 상황을 겪다보니 우리 다비다 가족들이 더 마음에 들어옵니다. 우리 다비다 가족들 중에는 몸이 아픈 분들이 많고 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 혼자 살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며 젊은 엄마들은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그 외로움은 많이 클 것입니다.
모두들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싶은 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앞으로 우리들이 의미 있고 더 활기찬 하루를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종류는 다르지만 누구보다도 더 힘들게 살아가는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달라진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이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인생에 감사가 생기고 좀 더 견디며 살아가는데 많은 힘을 얻게 되리라 믿습니다.
2. 사마리아 여인
2000년 전, 사마리아의 수가라고 하는 시골 마을에 어느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결혼을 5번이나 하였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는 동거하고 있는 남자입니다. 왜 결혼을 5번이나 하였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이라는 찬양이 있죠?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남자에게서 만족을 추구하려고 결혼을 여러 번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남성이 위에 있는 시대이지요. 여자는 이혼할 권리가 없었다는 것이고, 동거하는 것조차도 그녀가 원해서라기보다는 그녀와 함께 사는 동거남의 결정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여인이 만족을 위해서 결혼을 여러 번 한 자유분방한 여자였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회개를 촉구했을 것이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대낮에 물을 길으러 다닙니다. 이스라엘은 저녁 6시부터 하루가 시작되고 낮에는 너무 더워서 집에서 지냅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남성 중심의 사회의 피해자인 이 여인은 너무 힘든 자신의 상황을 남들 앞에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늘 주눅 들어 사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3. 우물가의 만남
오늘도 그 여인은 정오쯤에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물가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분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주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주시는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한 모습으로 우물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장 밝은 시간에 가장 어두움을 안고 있는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여인이 지극히 소외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7절)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여자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사람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제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개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회적인 금기를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 상관없이 여자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말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요.
3~4절을 보면 “유대를 떠나사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느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도 갈릴리로 가실 수 있었지만, 굳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말을 걸고 있는 사마리아의 한 여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짐승처럼 여기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환영하는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돌을 던질 수도 있는 사마리아로 향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사마리아의 수가성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생각하니 주님이 너무나 좋습니다.
4.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
물을 좀 달라하는 낯선 남자의 말에 그것도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걸었으니 그 여자는 너무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왜 물을 달라고 하나이까?” 묻는 여자에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부탁했을 것이고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10절)라며 자신을 유대인이라 말하지 않고, 문화적 역사적 한계를 초월하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께서 대답했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예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성령인데, 속에서부터 나오는 샘물이 나올 때 영혼이 살아나게 되고 우리의 인생은 변화가 됩니다. 이 세상 것은 순간의 만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가 되십니다. 15절을 보면 그 여인은 “그런 물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다시는 물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여인이 물을 달라고 합니다. 이 여인의 목마름이 더 드러납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물을 주면 될 텐데 뜬금없이“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가 “5번 결혼한 것과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여자의 정곡을 찌르셨습니다. 아픔이며 문제인 사실을 예수님은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막혀있는 문제의 자리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비밀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사막에 샘이 솟는 비밀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다가옵니다. 예수님 자신도 연약한 인간의 삶을 살아보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이 여인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여인을 만난 적도 없고 여인에 대하여 들은 것도 없을 텐데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나를 빛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늘 기다리던 구원자를 드디어 만났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에는 경멸이나 비난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측은하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고통당하던 이름 없는 여자를 만나 주시고 그런 여인에게 놀라운 영적 진리와 함께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5.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알려주신 놀라운 영적 진리는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배에 관한 질문은 여인이 먼저 했습니다. 여인은 예배를 사모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예배 장소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예배 장소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어느 곳에나 임재하시며 언제 어디서건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이 연결되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이루어질 때 생활 속에서 열매를 많이 맺고 그 삶 자체가 예배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참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놀라운 진리를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여인에게 최초로 들려주셨습니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피했던 여인이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간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예배로는 내면의 갈증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 여인은 마실 물을 길으러 나왔지만 정말 그에게 필요했던 물은 내적 갈증을 해소해 줄 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6. 변화된 인생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신이 피했던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합니다.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29절)
자신의 과거 현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구원자를 전합니다. 자신을 비참한 마음으로부터 구원해 준 예수님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에게서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