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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야 일어나라(행 9:36-42) / 박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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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1-06-10 13:07 조회14,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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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야 일어나라(행 9:36-42)

박정수 목사(본회 이사장)

 

1. 들어가는 말

 

5월은 계절의 여왕이고 장미의 계절입니다. “당신을 보니 장미꽃이 생각납니다!”라는 말로 서로 인사를 나눠볼까요? 오늘은 ‘향기 나는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법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두려움에 떨다가 억지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오래 전부터 죽음을 준비하며 살다가 천국을 확신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고,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았기에 이 분은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과 감동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여제자 다비다의 삶을 통하여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설교하고자 합니다. ‘죽음’을 세 가지 측면에서 준비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① 나의 관점에서는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 ② 이웃의 관점에서는 관심 없는 죽음이 아닌 아쉬운 죽음, ③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단절된 죽음이 아니라 영광 돌리는 죽음이어야 합니다.

 

2. 나에게는 ‘맞이하는 죽음’

 

사람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때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또한 정들었던 가족과 영영 이별할 때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이 두려움과 슬픔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 두려움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소개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1~22)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사십시오. ①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사십시오. ② 지금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하나님을 위해 꼭 하고픈 일을 적어보세요). 천국 문 앞에서 예수님을 뵈올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3. 이웃에게는 ‘아쉬운 죽음’

 

욥바에 살고 있던 다비다 자매는 선행과 구제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욥바는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이며,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55km 떨어져 있습니다. 당시 항구도시에는 남편들이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으로 인하여 돌아오지 못해 홀로된 여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싱글맘들은 지금처럼 취업할 곳도 많지 않아 자녀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비다라는 여인은 바로 이런 싱글맘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다비다는 자신이 손수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서 홀로된 싱글맘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제공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20세 이상의 성인이 되면 사람이 세 종류로 나눠집니다. ① 남의 것을 이용하여 내 필요를 채우는 사람 ② 내 것을 베풀어서 남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 ③ 도움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다비다가 죽자 욥바의 제자들은 베드로에게 두 사람을 보내어 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베드로는 욥바에서 18km(약 50리)나 떨어진 룻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모든 과부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자신들이 받은 사랑의 증표를 베드로에게 보여주었습니다(39절). 이런 분은 이 땅에 더 오래 살면서 소외된 자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과부들이 베드로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소천했을 때 이웃은 상반된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95세면 장수하셨네요!”와 “이 분이 살아계시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텐데...”, “가족들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결국은 이렇게 죽는구나!”와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가셨구나!” 등등. 우리는 후자의 반응이 나오게 살아야 합니다.

 

4. 하나님께는 ‘영광 돌리는 죽음’

 

베드로는 사람들을 내보낸 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쭤보았을 것입니다. 다비다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을 확신한 베드로는 시체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본문 4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베드로의 선포를 통해 다비다의 시신에 임하자 소생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41절). 이를 지켜본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비다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가룟유다와 베드로의 삶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 14: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요 21:18~19)

 

5월에 이수교회 등록한 신혼부부 가정이 있는데, 남편의 간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신은 결혼하기 전까지 크리스천이 아니었는데, 90세 넘으신 할머니께서 몇 년 전에 예수를 믿고 얼마나 행복하게 교회를 다니시는지, 손자인 자신한테 문자나 전화를 자주해서 꼭 예수 믿으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후 이렇게 이수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디 여러분도 남은 인생에서 가정복음화의 열매, 이웃전도의 열매, 이웃 사랑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5. 나가는 말

 

“다비다야 일어나라”에서 다비다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 )야 일어나라”고 외쳐보세요. 영적 게으름에서 일어나라, 너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에서 일어나라고 외쳐보세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다비다 자매회 여러분,

 

1) 갑자기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미리부터 준비하여 맞이하는 죽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우리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여 그들에게 아쉬운 죽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죽음이 되길 지금부터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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