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행9:36~42) / 이주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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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4-06-13 11:40 조회1,75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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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행9:36~42)
이주은 목사(본회 회장)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 여인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지난 1월 창립 30주년 기념 뮤지컬 ‘욥바항의 사랑’이 자꾸 떠오릅니다. 제가 맡은 역할은 남편이 죽은 과부로서, 너무 힘들어 울다가 웃다가 약간 맛이 간 과부 역할이었지요. 그 역할을 연습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역할 속으로 빠져들어 나의 삶을 생각해보기도 했고, 우리 자매님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답니다.
‘욥바항의 사랑’ 을 보면서 홀로된 여인들과 함께 사랑의 삶을 산 ‘다비다’란 여인의 인생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비다의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자신의 인생을 아낌없이 소비하며 살다 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비다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많으실 것인데 이 시간 “우리 다비다자매들 후회 없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오렴.” 하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인가요?” 라는 질문을 하실 텐데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길 원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을 다 같이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율법 중에서 어느 것이 크니이까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원 없이 사랑하고 산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았을 때 후회가 없는 죽음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다비다’의 인생이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인생으로 영향력을 남겼듯이 우리들의 삶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인생으로 기억되는 인생이 된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사랑
우리 다비다 자매님들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다비다’는 우리 다비다자매회가 설립되게 된 배경의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다비다’의 이름 뜻은 ‘사슴’이라는 뜻입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헬라식 이름은 ‘도르가’ 입니다. 이 이름은 아마도 “사슴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살아라.”하는 의미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름처럼 ‘다비다’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 36절을 보면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성경에 유일하게 여제자란 호칭이 붙은 여인 그 이름 ‘다비다’. 다비다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제자란 호칭이 붙은 것을 보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제자를 나타내는 단어는 동사형태의 ‘마테튜오’와 명사형태의 ‘마테테스’가 있는데, 명사형태의 ‘마테테스’는 선생과 같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단순히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동사형태의 ‘마테튜오’는 배우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선생을 따라 자기의 삶의 방향까지도 바꾸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은 “따라야 할 분을 높이고 그분을 위해 내 모든 소유를 맡긴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해 주신 나의 구주로 믿고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들에게 친히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의 삶을 깨닫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비다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삶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방향으로 마음이 모아지고 몸이 따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실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뒤돌아보면 우리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지요. 기도를 하더라도 주님과 교제하기보다는 “주시옵소서.”하고 구하는 기도가 더 많습니다. 주님을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주님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자녀로 성장해 간다면 주님이 너무도 기뻐하지 않을까요?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저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많이 비춰지더라고요. 자신만을 사랑하는 모습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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