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힘 / 주선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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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2-15 15:42 조회26,2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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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 우물가>
어머니의 힘
(신명기6장 4절-9절)
<?xml:namespace prefix = v /><?xml:namespace prefix = o /><?xml:namespace prefix = w />매월 다비다회지 받으면서 재미있게 읽으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예전에는 김혜란 목사 혼자서 애썼는데 갈수록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글을 올리며 발전해 나가는 거 보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걸 본다. 하나님은 약한 자의 하나님이라서 약하다고 생각하시는 여러분들을 예수님도 귀하게 보시고 성령께서 역사를 하셔서 이렇게 재미있게 발전해 나가는 것 같다.
오늘 ‘싱글맘 데이’를 맞으면서 여러분들에게 “어머니의 힘”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내가 18개월 되었을 때 우리 아버지는 23세에 폐병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의 5형제가 다 폐병으로 돌아가셨다. 나의 어머님 역시 21살에 싱글맘이 되신 것이다. 되돌아보니 망한 집안의 18개월 된 딸인 내가 혼자 사는 어머니 밑에서 어머니의 신앙과 사랑을 받고 어머니의 믿음과 철학이 내게 들어와서 오늘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의 나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동시에 내 어머님께 감사하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고 지혜롭게 나를 키우셨는지, 나를 위해 희생, 헌신해 주신 어머니가 계셔서 내가 여기 이렇게 산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여러분도 어머님 생각하면 저와 비슷할 것이다. 어머니 사랑밖에 없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제일 닮은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을 담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은 어머니다. 세상의 최상의 선물이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 삭막하겠는가? 나의 어머니도 신앙이 없었더라면 나를 이렇게 키워낼 수 없었을 것이다.
21살의 나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없이 오직 신앙 하나 뿐이었다. 아버지가 신앙이 있으셔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유언하시기를 “세상은 잠깐이요. 딴 생각 하지 말고 딸 선애를 기독교선생으로 만들어주시오.”라고 한마디 부탁하고 가셨다. 나의 어머니는 그 부탁하나 붙들고 97세까지 사셨다.
나의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콩나물 팔고, 삯바느질 하고, 고무신 공장에서 일하고, 그러면서 나를 여학교까지 교육시키셨다. 그때는 부잣집 딸들도 공부하지 못했는데 나를 기독교 선생을 만들려고 공부시키시고 여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피아노를 배우라고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셨다. 공장에 다니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데 그 비싼 피아노 레슨비를 내야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어머니의 생각에는 기독교 선생이란 오르간을 반주하는 선생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김활란 박사가 유학을 마치고 평양 숭실대학 강당에 오셨을 때 어머니는 내 손잡고 그곳에 가셨다. 그곳에서 단발머리에 새까만 두루마기 입은 김활란 박사를 보시고 우리 어머니는 “아, 저 사람이 기독교 여선생구나” 라고 생각하시고, 내가 신학교 선생을 할 때 어머니가 새까만 두루마기를 내게 해주셨다. 김활란 박사님 같이 입으라고…….
신앙으로, 기도로 삶의 목표를 정하시고 힘 있게 사신 나의 어머니, 결코 흔들림이 없으셨다. 한 번도 눈물 흘리면서 내가 너 때문에 고생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추운 겨울 학교에 갈 때엔 신발을 아랫목에 신문지로 싸서 따뜻하게 덥혀 주시고, 어지간히 아파도 학교 빠지면 안 되었고 시간이 늦어 학교 지각하게 생겼는데도 아침은 반드시 먹어야 했다. 97세에 돌아가시면서도 강의 마치고 늦은 밤에 돌아올 때 추운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차에서 내리면 손잡고 기뻐하셨다. 이렇게 강한 사랑으로 나를 키워 주셨다.
어머니는 흔들림 없이 곧게, 정직하게 사셨다. 내가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땅에서는 어머니의 신앙, 어머니의 힘 때문임을 거듭 고백한다.
어머니는 일하는 것을 만족해 하셨기 때문에 내가 90세 되어서도 부르는 곳 마다 “예”라고 하며 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다 어머니 은혜다.
눅1:38은 내가 은혜 받은 말씀이다. 마리아에게 잉태할 것을 말씀하실 때,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나는 이 말씀 붙잡고 산다. 내가 예수의 피를 받아서 예수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모든 환경에서 모든 일에 “예”라고 받아들인다. 모든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예”라고 한다.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바로 어머니가 그런 신앙으로 그렇게 살아오셨다.
나는 내성적이고 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보니 내가 망신당하는 거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당한 십자가는 얼마나 망신스럽고 부끄러웠을까 그거에 비하면 내가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인 것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싱글맘은 약해지지 말고 강해야 한다. 여러분의 기도, 삶, 삶의 철학, 원리가 섰으면 그것 붙잡고 살아야 한다. 약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한심하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예수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왜 약하고 속이 상하는가?
주위의 행복한 사람을 보고 나만 왜 이러지? 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사람들도 다 괴로움이 있다. 하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우리다. 혼자되었다고 약해지지 마라. 나는 친척 혈육, 자식도 하나도 없다. 그래도 하나님하고 사니까 한 번도 내가 외롭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다. 물론 내가 어려서 사춘기 때 그런 생각 많이 했지만 주님 만난 이후는 너무 즐겁고 나에게 주신 축복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송, “나를 지으신, 부르신, 보내신 하나님”을 매일 부른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서 눈물이 난다.
팔자타령하지 말고 강하라. 어머니의 힘은 강함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능력이다.
‘유진 피터슨’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어머니를 통하여 온 인류를 택하셨다. 세상의 한 엄마를 택해서 구세주를 낳게 하셨다. 바로 당신을 택해서 아이들에게 생명과 소망을 전달하셨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가장 어려울 때에 어머니를 쓰시는데 국가의 위기에 드보라와 한나, 에스더를 쓰셨고,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세계를 구원하셨다. 모든 귀중하고 소중한 일들은 여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놀랍다. 강한 자가 많은데 약한 자, 힘이 없는 자를 택하셨다. 우리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가정이 어려울 때 여자가 가정을 살린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여성은 약하지 않다. 하나님이 더 강하게 사용하신다.
21세기는 여성시대라 하는데 사실은 모성시대이다. 소망과 생명을 주는 본원지가 되는 엄마의 사랑. 이 엄마의 사랑으로 다 변화될 수 있다. 이 시대는 경제적으로 부흥 되었다. 그러나 타락한 이 모습대로는 발전할 수 없다. 마음을 바로 잡아 인간다운 생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모성애로 가능하다.
탈북자들도 돈 줘서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이 고프다. 사랑이 고픈 사람들에게 모성애로 품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할 일이다.
한국 교회가 이 시대의 모성애가 되어야한다. 어머니의 사랑, 조건 없이 참고 견디는 사랑. 시기 없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다독여 주면 변화 받는다.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 살면 내가 행복하지~~” 나의 행복을 생각하고 자녀들을 키우면 안 된다. 한나는 단순히 아들 낳기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한나의 마음속엔 이 사회에 대한 간구함, 갈망함이 있었다. 삼상 4장에 보면 그의 기도가 얼마나 깊고 신학적이고 영적인지. 이 사회를 고칠 사람, 이 민족을 바로 살게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그 아들을 성막에 맡기고 엘리 제사장이 키우게 했다. 그때 성막은 어둡고 음산한 천막이었다. 그곳에서 아이가 심부름 하도록 하니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겠나? 다 큰 아들 군대만 가도 잠을 못 자는데 어린 아이를 그렇게 자라게 했다.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서……. 한나에겐 이 사회를 바꿔놓기 위한, 이 백성을 변화 시키고 개혁시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한나의 기도는 사회의 지도자로 키워야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성령 충만한 기도였다.
여러분, 세상을 넓고 멀리 보고 이 사회를 위해 아들을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라. “내 아들이 장관이 되고 사장이 되고 부자가 되면~~”이라고 꿈꾸지 마라.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니다.
우리 마음에 어머니의 사랑을 더 넓게 품어라. 세계를 영적으로 지도하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부지런하셨다. 97세가 되도록 늘 청소가 몸에 뱄고, 콩, 녹두 담갔다가 맷돌에 갈아 떡을 만들어 늘 이웃에 나눠주었다. 자고 깨면 누구를 기쁘게 할까만 생각하셨다. 그 기쁨으로 사셨다. 섬기러 오셨다. 떵떵거리며 살러 오시지 않았다. 섬김을 받기 원치 않으시고 섬기며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늘 기뻐하셨다. 주님 마음에 모시고. 종이에 성경을 큰 글자로 써서 오며 가며 부엌에서 성경을 외우셨다. “히브리서 11장을 다 외웠는데 아무도 나보고 암송해 보라고 하지 않아서 섭섭해.” 하셨다. 기도와 봉사와 말씀만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사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나 하나를 위해 기쁘게 사셨다. 어머니의 사랑은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사회를 고치는 자녀를 키워라.
고생이 없으면 사람구실 못한다. 나도 많은 고생했다. 삼팔선, 6.25, 9살부터 밥해먹었다. 그 시절엔 밥해 먹는 게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큰 고생은 아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찾으며 살 때 내가 인간이 된다. 내가 큰다. 고생 없는 사람은 사람답지 못하다. 고생이 없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낮은 자, 약한 자를 쓰셔서 강하게 만들어 쓰신다. 영광은 하늘에서 받고 땅에서 영광 받으려 하지 말자. 잘 됐는데도 더 잘 되려하고, 먹고 사는데도 더 잘 살려하고, 예쁜데도 성형수술 하여 더 예뻐지려고, 이게 무슨 경쟁인가? 핸드백을 몇 백 만 원짜리 들어야 하는 이 정신이 무슨 정신인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자녀를 키우지 말라. 이것은 동물이다. 동물로 가고 있다. 사람답게 사람 사는 사회를 만드는 자녀를 키워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 때문에 하는 고생은 즐겁다.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고생은 즐겁다. 고생의 기쁨, 이것이 사랑이다. 고생을 멀리하지 말자. 고난을 기피하지 말자.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지신 그 길, 나는 죽는 날까지 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늙은이는 아프고 불편한 게 정상이다.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죽는 날 까지 한다. 하나님의 종이니까. 종으로 살다가 종으로 죽고 싶다.
고생을 기피하지 말고, 주님이 하라시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남이 싫다고 해도 한다. 좋은 차, 넓은 아파트, 좋은 코트가 문제가 아니다. 그런 가치관 가지고 살 필요 없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우면 그게 다 커버가 된다. 유학 다녀와 학교에 가보니 미국,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들은 허름한 옷 입는데, 직원들은 비싸고 화려한 옷 입는다. 박사들은 허름하고 싼 옷 입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정정당당하게 살아서 내 마음이 풍요로우면 그런 것 찾지 않는다. 속이 비어 있으면 빈속을 채워줄 것을 찾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안으로 마음을 채우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부자이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하며 고생을 즐기며 살기 바란다.
베드로는 멀리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끝까지 십자가를 따라간다.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간 어머니.
고생을 싫어하지 말고 즐기라.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강한 어머니 되기 바란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니 강하고 담대한 싱글맘 되길 바란다. 그래야 행복하다.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약한 싱글맘들이 하나님의 강함으로 기쁨으로 살게 하시길 기도한다.
<창립19주년, 주선애 교수님의 강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