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다자매회 회장 바통을 이어받으며 / 이주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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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2-04-12 11:36 조회10,6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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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자매회 회장 바통을 이어받으며
이주은 목사
다비다자매님들 안녕하세요? 김혜란 목사님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다비다자매회 회장을 맡게 된 이주은 목사입니다. 봄을 이길 겨울은 없다는 말처럼 겨울을 뒤로하고 따뜻한 봄이 왔네요. 여기 저기 예쁜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는 참 좋은 계절에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인생길을 걷게 되어 마음이 설레고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힘든 길도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면 가볍게 멀리 갈 수 있으니 서로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걸어가기를 바라며 축복의 마음을 전합니다.
1. 다비다와의 인연
저도 여러분들과 같이 싱글맘으로 살아온 지 벌써 24년이 되어갑니다. 서른 살에 예수님을 만나고 서른세 살에 싱글맘이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부에 이상증세를 보이며 가려워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보아도 암이라는 진단은 나오지 않아 계속하여 피부과 치료만을 하며 보내다가 시간이 흘러 피부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때서야 악성의 치료가 어려운 임파선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상태가 깊어져야 발견되는 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완치된 사람이 없는 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몸이 아파 집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매일 성경을 읽으며 보냈고, 그래서 그런지 마음에는 늘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투병생활을 하다가 1998년 5월 우리는 작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떠나가고 난 뒤 저는 남편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감사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투병생활 마지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자신이 먼저 갈 것을 알고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며 앞으로 남은 가족들이 살아갈 것을 걱정하며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자기 자신보다도 가족을 위한 희생을 생각하면서 저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다짐하였습니다.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나, 아들은 7살, 딸은 4살이었습니다. 곧바로 저는 취직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아이들 양육과 남편 병간호로 몸은 지친 상태에서 시작한 직장생활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힘을 얻었고,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한 지 7년쯤 되어 명예퇴직을 하였고, 몇 년을 쉬다가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열망이 깊어 2010년도에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해 5월 백석대 신학대학원 3학년이시던 김혜란 목사님을 알게 되어 다비다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조장을 맡으며 자매님들과 즐거운 다비다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같은 처지에 있는 자매님들과의 나눔은 그 자체로서 힐링이 되었고 회복을 가져다주었지요. 그렇게 신학 공부와 다비다 생활을 하면서 보내던 중에 저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되었습니다.
2. 일본선교의 여정
신학대학원 3학년 때 일본에 살고 있는 한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일본을 위한 기도부탁을 하면서 일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을 위해 기도하려면 일본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되겠다 싶어 일본전문 선교회의 강의를 듣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일본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놓고 늘 50세부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50세에 일본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아이들 둘이 대학에 들어가 적응을 한 뒤 저는 2015년 3월 선교사로서 발을 내딛게 되었고, 복음화율이 너무도 낮은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마음껏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카페교회를 세워 주중에는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행복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제가 선교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지원과 두 아이의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본선교였습니다. 두 아이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3. 아들의 소천
그렇게 6년이라는 일본생활이 흘러갔고, 작년 3월 어느 날 딸로부터 걸려온 전화, 오빠가 사고사로 하늘나라 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4월 초에 모처럼 아이들과 몇 달 간 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하여 비행기 표도 예매해 놓고 함께 즐겁게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더군요.
일본에서 그 소식을 듣고도 바로 달려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영사관에 가서 수속을 밟아야 했고,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바로 가는 비행기가 일주일 뒤에나 있어서 도쿄에 들러 이틀 뒤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아들 친구들이 참석하여 간소하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아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암흑의 시간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은 저를 밑바닥까지 가게 만들었습니다.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고, 걸을 힘도 없는 시간들...
그저 아프기만 한 가슴. 무디어버린 감정. 혼자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4. 다비다에서 찾은 새 소명
그때 집에서 멀지 않은 다비다 사무실이 생각났습니다. 김혜란 목사님이 집에 찾아와 주시고, 그때부터 다비다 사무실에 출근을 하듯 하였습니다. 김혜란 목사님과 이영복 장로님이 계신 사무실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을 느꼈고 자매님들과 함께 제자훈련, 큐티모임,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은 친구가 매일같이 찾아와 함께 해주었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를 먼저 보낸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는 아픔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없는 이 세상이 참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1년이 지났어도 아픔은 가시지가 않지만, 소박한 감사가 생겼습니다.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잘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어 감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감사입니다.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줄 수 없는 허무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삶. 옆에 있을 때 사랑하며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다비다 사무실에 출근하듯 할 때 김혜란 목사님으로부터 다비다 후임회장의 자리를 권유 받았지만, 제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태에서 다비다 사역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며, 김혜란 목사님처럼 오직 다비다만을 생각하며 한 길을 올곧게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싱글맘으로 살아왔던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생각해보게 되었고, 다른 일보다는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이 이끌어주실 것을 신뢰하며 나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다비다 회장직을 수락하고 쓴 시 ‘사랑만 하여라’에 제 마음이 잘 녹아 있습니다.
사랑만 하여라
다비다자매회가 28살이 된 해 김혜란 회장이 건네준 다비다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작년, 기절한 듯 힘든 시기에 나를 보고 달려오는 그를 슬그머니 외면했다.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 어려운 길을 어떻게 내가?
하지만, 무심코 흘러나온 말 한 마디 “하나님 뜻이면 순종하겠습니다.”
고백과 함께 생각이 스쳤다.
28년을 걸어오게 한 힘은 무엇일까?
김혜란 회장이 포기하고 싶었을 때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
“일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사랑만 하여라.”
맞다. 사랑이 답이다.
그래, 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랑이다. 그 길을 오래 걷는다는 것도 사랑이다.
아, 그래도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길을 오래 걸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왜 걱정하느냐?
내가 홀로된 자매들과 함께하고 있단다.
다비다자매회가 소중하단다.
왜 염려하느냐?
내가 연약한 너를 붙잡고 있단다.
나와 함께 출발하자.
외로운 자들과 함께 사랑의 집을 계속 지어가자.
네, 사랑하는 주님
주님 손 꼭 잡고, 자매들 손 꼭 잡고 사랑의 집 지어갈게요.
사랑만 할게요.
어느새 내 손엔 바통이 쥐어졌다. 왠지 무겁지가 않다.
5. 앞으로의 다비다를 기대하며
다비다를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비다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저는 다비다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 마음을 느꼈습니다. 다비다라는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알기에, 그 하나님이 이끌어 주실 것을 알기에 믿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려 합니다. 제가 다비다에서 지금도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힘들고 외로운 자매님들이 다비다에 와서 회복될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습니다.
저는 김혜란 회장님이 지금까지 그래오셨듯이 그 자리에 늘 우뚝 서 있는 나무처럼 다비다에 서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주고 힘들 때 쉴 곳이 되어 주고 어딘가 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찾아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다비다를 만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깊은 나눔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올해는 우리 다비다 가족들이 한 번씩 사무실에 놀러 오시고 저도 여러분들을 만나 마음껏 사랑을 나누는 나날이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이어받은 바통이 왠지 무겁지 않은 까닭은 그분이 곁에 계시고 여러분이 동역자로 함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조금씩 알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